[뷔진] 고슴도치도 털갈이를 해요

다음 편이 마지막

“뭐고, 어디 갔노?” 익숙하게 비밀 번호를 누르고 집 안에 들어 선 태형. 그러나 집 주인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온기가 다르다. 주인을 잃은 집은 냉기가 감돈다. 태형은 술에 취해 혼곤한 정신을 억지로 때려 세우며 상황을 살핀다. 이 늦은 새벽에 대체 어딜 간 걸까. 좁디 좁은 집 안에서 석진이 태형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은 없다. ...

“서정완 병장 아버지 온 것 같습니다” “결국 또 왔구나....” “이번에도 저번처럼 그렇게 흐지부지 되는 거 아닙니까?” “...............” 큰 사건이 터졌다. 전입 온 지 두 달밖에 안 된 이등병이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을 때렸다. 그것도 한 대 쥐어 박은 정도가 아니라 얼굴이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 물론 그 이등병의 얼굴 역시 멀...

“김태형 이리 와” “어?” “이리 오라구” “왜? 뭐 하게?” “아 오라면 얼른 와!” 이미 석진의 마음에는 태형의 부상이 전적으로 자신 때문이라고 못이 박혀 있다. 그래서 다친 그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지 오래다. 욕실에 들어 갔던 석진이 갑자기 태형을 부른다. 청소를 하러 들어간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너 좀 잘 한다?” “아 뭘 이 정도쯤이야.... 하하하” “이등병이 이 정도면 잘 하는 거지 임마” 칭찬은 고래, 아니 김태형을 웃게 한다. 사실 태형에게 잘 한다고 칭찬을 퍼붓는 건 갓 돌 지난 아이가 제 손으로 책을 펼쳤다고 칭찬 받는 거나 다를 게 없다. 뭘 대단한 것을 해내서 칭찬을 하는 게 아니라, 칭찬을 받으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게...

[너한테 전화 하려고 했었어. 아직 너 못 잊은 거 확실해] [네 생일이나 너랑 관련된 무슨 날만 되면 사람이 연락이 안 돼. 징그럽다 진짜. 그냥 둘이 다시 사귀면 안 되냐? 너도 석진이 형 좋아하는 거 아니여 아직?] [전역한 뒤로 내가 알기론 아무도 안 만났어. 못 만난 거지. 저러는데 어떻게 사람을 만나] 태형은 카페에 앉아 석진이 오기만을 기...

“푸......” “바람 좀 쐬라. 좀 나을끼다” 비는 그친 지 오래다. 하루 종일 추적거리며 기분을 젖게 하던 봄비는, 석진을 다시 만난 이후로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이 그쳤다. 지금 태형은 석진을 데리고 잠시 가게 앞에 나와 앉아 있다. 아직 발 앞에는 지붕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이 톡톡 떨어지고 있다. 석진은 고개를 땅 쪽으로 수그린 채 말이 ...

넌 가시를 세워도 사랑스러워

“어 형, 여기요” “뭐여? 완전히 맛이 갔네?” “하... 혼자서 감당이 안 돼서 형 부른 거예요” “왜 이래? 얼마나 마신 거?” “병 세워 놓은 거 봐요” “워메” 갑작스러운 지민의 전화를 받고 뛰쳐 나온 호석은, 우선 석진이 쓰러진 옆에 놓인 소주 병의 개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하나, 둘, 셋 - 와 세 병이나 마셨다고? 그러나 문제는 병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