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진] V on the line

v on the line 외전

“기분 어때?” “무서워....” “괜찮아. 나 있잖아. 한 발자국도 안 떨어지고 옆에 있을게” “뭐라고 하시면...” “진아” “어?” “누가 뭐라고 하든 나만 믿을 수 있지? 내 말만 들을 수 있지?” “........... 응...” 이십여 년 전, 석진은 이 대저택의 높다란 담과 커다란 대문을 보고 숨이 막힐 뻔 했던 적이 있다. 그날 석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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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 여러분의 입영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부대 입구에 높다랗게 걸린 현수막, 그 앞에서 석진은 잠시 걸음을 멈춘다. 아직 부대 안으로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목이 꽉 메는 기분이다. 이십여 년 전의 기억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 또렷이 떠오른다. 석진은 이 곳, 이 자리에서 태어나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로 걸음을 떼질 ...

“사돈한테 물어 보고 네가 좋아한다는 것들로 차리긴 했는데, 어떨까 모르겠다. 먹어 봐라” 석진은 눈앞에 펼쳐진 음식들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음식들을 누가 누굴 위해서? 지금 석진은 너무나도 무방비한 상태다. 숙적을 이렇게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이 음식들 중 어딘가에 독약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석진은 시어머니의 눈을 바라본다. 이것이...

“엥? 아빠가 요리해?” “일어났냐? 가서 씻고 와. 아침 차려 놓을게” “엄마는?” “엄마 아직 자. 원래 애기 가지면 잠 많아져” “아 그래서 그렇구나...” 태형이 직접 요리를 하는 모습은 무척 진귀한 광경 중 하나다. 그가 요리를 할 줄 모르거나 혹은 하기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직접 손에 물을 묻히거나 칼을 잡을 기회가 없다시피 하기 때...

“석진아” “응?” “그냥 돌아갈래?” “왜?” “얼굴 안 좋아 보여” “아니. 괜찮은데” “초기잖아. 조심해야지. 괜히 험한 소리 듣고 너랑 애한테 안 좋을까봐 난 그게 제일 걱정된다” “내가 여기 왜 오자고 했을 것 같아?” “그야 당연히.....” “기억 안나? 당신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아니까 이러는 거지” “아니. 당신은 당신...

“안 시켜도 잘 하네?” “이래야 안 쫓겨나지” “착하다” “나 원래 착하잖아” 주방에서 덜그럭거리며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나기에 나가 보니 태형이 설거지를 하고 있다. 이런 안온한 저녁 풍경이 이따금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석진은 조용히 태형을 끌어 안아 본다. 그의 체온이, 그의 향기가 네 눈 앞에 보이는 게 현실이 맞다고 일러준다. 그 메...

“석진아....” “왜?” “진짜.....야....?”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만을 남긴 대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석진의 엄마는 먼저 자리를 떠나버렸다. 남은 건 태형이다. 태형은 여전히 꿈 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 같다.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이 상황에 말을 더듬을 뿐이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석진을 부른다. 석진은 현관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김승하” “..........” “야!” “어...? 어.. 왜?” “옷 안 갈아 입어?” “옷..?” “다음 시간 체육이잖아. 옷 안 갈아 입냐구” “아아 맞다....” 전학생은 꽤 위험한 아이인 것 같다. 승하는 이따금 이 전학생에게 혼을 빼앗기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낀다. 천년 묵은 여우를 만난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렇다고 전학생이 딱히 승하...

“석진아!!!” “왜, 왜? 무슨 일인데?!” “하.... 아니구나....”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아니... 놀라서....” “어? 식은땀까지 흘리네?” 오늘따라 몸이 고단해서 소파에 조금만 누워 있자던 게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승하는 아직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태형은 오늘 술자리가 있으니 늦겠다는 이야기를 아침에 하고 갔다. 어...

“안녕하세ㅇ.....” “잘 지냈나 사돈 총각?” 프런트 데스크에서 잡기들을 정리하느라 머리를 숙이고 있던 지민은, 학원 입구의 자동문이 열리는 익숙한 소리를 들었지만 정수리가 싸했다. 불길한 기분에 고개를 들었을 때 지민은 경직되었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결코 이곳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그러니까 이곳에 나타나서는 안 될 사람이다. 놀라움과 당혹감...

“아들” “응?” “바빠?” “응. 나 바쁜데 왜?” “지금 하나도 안 바빠 보이는데?” “응 아니야. 나 지금 되게 바빠. 뭐 심부름 시킬 거면 아빠가 갔다 오세요” “아니 심부름 시킬 거 아니고 잠깐 얘기 좀” 살면서 이렇게 긴장되는 순간이 흔하지는 않다. 어쩌면 아이에게 이혼 사실을 알리던 그 순간만큼 떨리는 것 같기도 하다. 태형과 석진은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