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만 더 기다려 보자”


“야 이거  꼰질러야 되는 거 아니냐?”

“......”

불침번 교대 시간이 지나도록 석진은 돌아 오지 않았다. 태형과 동기도, 그리고 뒤 순서 교대자들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저들끼리 웅성거렸다. 태형은 아무 말 않고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십여 분쯤 지났을까. 누군가 계단을 다급히 뛰어 올라 오는 소리가 들렸다. 태형은 그게 석진일 거라고 생각했다.

 

“미안, 고생들 했다. 앞 근무자는 가서 쉬고 뒷 근무자는 근무 잘 서고....”

 

석진은 훈련병들 쪽은 쳐다 보지도 않았다. 태형은 그 찰나의 순간 눈치를 챘다. 석진의 눈이 충혈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옷을 갈아 입고 자리에 누웠다. 시계가 새벽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 잠이 든다 해도 3시간도 채 못 잘 것이다. 그러나 쉽게 잠이 들지 않을 것 같다. 천장만 뚫어져라 쳐다 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다. 김석진은 왜 눈이 퉁퉁 부었을까. 아까 그 사람과 김석진은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 정작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으면서 불어가는 궁금증에, 태형은 어지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도저히 답답해서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이라도 다녀 올까 싶어서 태형은 일어나 다시 복도로 나갔다. 마침 문 앞에 불침번이 서 있었다.

 

 

“내 화장실 좀 갔다 오게”

“응응, 다녀 와”

 

“보고 안 해도 되나”

“아까 화장실 갔는데 분대장도?”

 

“아.. 알겠다”

 

과연 석진의 자리는 또 다시 비어 있었다. 태형은 한숨을 얕게 쉬고 화장실로 향했다. 사실 별로 볼일이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잠이 워낙 안 오니까, 바람이라도 좀 쐴까 싶어 나온 거였다. 화장실 앞에 갔을 때, 석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챘다. 걸음이 앞에서 멎었다. 누가 화장실 안에 있었다. 그냥 있는 게 아니라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얕은 기침 소리가 들리고. 태형은 지금 화장실 안에 누가 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거기서 들리는 소리들을 감지했을 때,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왜? 대체 왜?

 

안으로 들어섰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최대한 조심조심. 화장실 세 번째 칸에 그가 있는 것 같았다. 태형은 조금 더 안으로 다가 섰다. 그는 문도 잠그지 않은 채였다. 태형이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안쪽으로 다가 가 봤다. 바닥에 남아 있는 물기가 찰박거리며 태형의 발길을 잡았다. 혹시나 석진이 발자국 소리를 들을까봐 발에 힘을 잔뜩 줬다. 석진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웅크려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좀 더 확실히 알게 됐다. 그는 들썩이면서 울고 있었다.

속에서부터 힘차게 솟구치는 울음을, 꾹꾹 누르느라 용을 쓰는 중이었다.

그리고 손바닥 하나 너비만큼 열린 문 사이로, 석진의 모습과 마주했을 때. 태형은 온 몸이 식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석진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분대장님....”

 

“김태형...”

“............”

 

석진은 태형을 보자 서러움이 확 북받친 것 같았다. 겨우겨우 억누르고 있던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태형은 여기서 더 이상 자신이 머무르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직감했다. 문을 열고 석진에게로 다가 갔다. 왜 이 밤중에 여기서 청승맞게 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형은 일단은 석진의 머리를 끌어 안고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석진은 여전히 변기 위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제 머리를 태형의 품에 의지한 채 입을 틀어 막았다. 끅끅, 울음 넘어 가는 소리가 사무치게 태형의 가슴까지 찢었다.

태형은 부디 석진이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울음으로 울어주길 바랐다. 아무도 이곳을 찾아 오지 않게. 아무도 지금 이 순간을 방해하지 않게. 석진의 슬픔이 오롯이 태형에게로 옮아 붙고 있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 다음 날도. 석진은 태형에게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았다. 태형은 아무런 변명이나 해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석진이 왜 그리 서럽게 울었는지, 자신은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석진 쪽에서 태형을 의식적으로 피한다는 게 느껴졌다. 조금은 섭섭했다. 그렇게 서로가 어색하고 섭섭한 마음을 안은 채로 훈련소의 3주째의 날들이 시작됐다.

 

태형은 사격장으로 가면서 석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걸었다. 껍데기만 남은 사람 같았다.

 

“앞으로 밀착”

 

걷다가 사이가 벌어진 대열을 맞추느라, 훈련병들을 윽박지르는 소리에도 힘이 없다.

 


 

“오늘은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 똑바로 들어, 정신 놓지마. 알았어?”

 

힘이 없어 보이더니, 사격장에 와서는 다시 까랑까랑하게 목이 핏대를 세우는 석진. 사격장에서는 워낙 위험하기 때문에 더더욱 훈련병들을 빡세게 굴린다는 소문은 안 들어 본 게 아니다. 그러나 막상 조교들의 눈빛을 보니 모두 칼을 갈고 나온 것 같았다. 석진도 사격장에 와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가 살아 났다. 물론 태형의 눈에는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게 선하게 보였다.

귀가 따갑도록 들은 사격장에서의 안전 수칙과, 총기 사용법을 다시 한번 인이 박히게 듣고. 그러고도 모자라 사격 대기조들은 밑에서 수도 없이 사격 자세와 안전 수칙을 연습하고 있었다. 태형은 8조에 편성되어, 사격장에 올라 가기까지 조금 긴 시간을 아래에서 머물러야 하는 덕분에 석진의 표정이며 이것저것을 유심히 살필 수 있었다.

 

 

“총구 똑바로 들어!”

 

석진의 목소리가 악에 받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표정에는 핏기가 없다.

 

 

“33번 훈련병,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점점 석진은 태형 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목소리는 더더욱 앙칼지게 차오른다

 

 

“야 34번! 발 들어 발! 죽고 싶냐?!”

 

태형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석진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친 적도, 말을 나눈 적도 없었다. 석진이 자신을 껄끄러워 할까봐 태형 쪽에서 더더욱 조심하기도 했다.

 

 

“35번”

 

석진이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한층 꺾였다.

 

 

“35번 훈련병 김태형!”

 

“잘 쏘고 와. 잘 하면 집에 전화하게 해 줄 수도 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태형은 조금은 맥이 풀렸다. 자기에게도 까랑까랑하게 쏟아 붓길 바랐던 걸까. 자신에게 와서는 마치 조금 전과는 다른 사람인 양 푹 누그러지느는 석진의 모습에, 태형은 어딘지 모를 서글픔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어 엄마, 나는 잘 있다. 괜찮다. 밥도 잘 묵고. 아 괜찮다니까. 진짜”


알고 보니 사격을 잘 하면 전화 하게 해 준다는 건 조교들이 다 그냥 하는 소리였다. 사격 성적과 상관없이 훈련병들에겐 공평하게 집에 전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태형 역시 떨리는 마음으로 부모님과 통화를 했고, 콧날이 시큰해지는 걸 겨우 억누른 채 1분 간의 전화 통화를 무사히 끝냈다. 그리고 전화 통화가 끝난 훈련병들은 바로 내무반으로 들어 가서 대기하라고 했다. 해도 다 떨어진 캄캄한 밤에 또 무슨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생활관으로 석진이 아닌 다른 조교가 불쑥 들어 섰다. 태형은 깜짝 놀랐다. 혹시 김석진에게 무슨 일이라도? 다들 담당 조교가 아닌 사람이 들어 온 것에 깜짝 놀랐는데,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질까, 모두들 입에 침을 바르며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어, 조사할 게 좀 있어서 왔는데. 혹시 조교 해 보고 싶은 사람”


뜻밖의 일이었다. 조금 전에 키 180 이상 되는 사람들을 모두 차출해 나가고 난 후였다. 보통 키 180 이상의 사람들은 헌병대나 의장대 등에서 차출해 가는 거라고 들은 바 있어서, 태형은 억지로 우기면 따라 나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애초에 헌병대나 의장대는 태형의 생각 밖이었다. 그런데 ‘조교’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석진의 곤한 모습을 보며, ‘조교는 목에 칼을 들이 대도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던 태형이었다.

 

“35번 훈련병 김태형! 해 보고 싶습니다”

“오 35번... 또 다른 사람? 없어? 그럼 35번 훈련병만 데려 간다?”

 

태형이 자신 있게 손을 든 이유는 분명했다. 태형에게 있어 석진을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왜 애초에 이걸 생각하지 못했던지. 하늘이 내린 듯한 기회에 태형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태형은 따라 나오라는 조교의 말에, 그의 뒤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는 이미 다른 생활관에서도 조교를 자원해서 나온 훈련병들이 여럿 있었다. 다들 서로 눈빛을 주고 받으면서 야 너도? 하며 조용히 킬킬거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한 사람씩 간단하게 면담을 할 거다. 면담 끝난 사람은 곧장 자기 생활관으로 돌아 간다, 알겠지?”

 

아까 태형을 불러 데려 나갔던 조교가 말했다. 아무리 둘러 봐도 석진은 보이지 않았다. 석진이 이곳 조교들 중에서는 가장 고참이라는 걸 훈련병들은 다 안다. 그래서 태형도 이런 일에는 석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아서 조금은 맥이 빠졌다.

 

 

“35번 훈련병”

“35번 훈련병 김태형!”

 

“안으로 들어 가”

“예”

 

상담실로 들어 갔을 때, 태형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멈춰 서 버렸다. 석진이 거기 앉아 있었다. 석진으로서도 뜻밖이었고 태형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눈빛이 허공에서 멎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석진이었다.

 

 

“어, 앉아”

“예”

 

“조교... 하려고?”

“예 그렇습니다”

 

“하지 마”

“예?”

 

“하지 말라고”

“왜....”

 

“힘들어 이거 진짜”

 

 

석진의 단호한 반응에 태형은 적잖이 놀랐다. 반가워 해 줄 줄 알았는데 뜻밖이어서 또 한 번 섭섭했다. 가뜩이나 며칠 간 자신을 피하는 것 같은 석진의 태도에 마음이 서글펐는데, 이것마저 피하나 싶어 화가 났다.

 

 

“전 괜찮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

 

“불면증이라 익숙합니다”

 

“네 개인 시간도 없어”

“어차피 군대에 놀러 온 거 아닙니다”

 

“훈련병들 또라이들도 많아 김태형”

“저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 맞습니까 분대장님”

 

“...............”

“저 누구한테 얘기한 적도 없고 얘기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 그만 피해 다니십쇼”

 

“야, 까분다 너”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대장님 때문에 조교 지원합니다”

 

“...........김태형”

“아프면 얘기하라고 하셨습니다 저한테”

 

“...............”

“분대장님도 아프면 저한테 얘기하셔도 됩니다”

 

 

조교가 된다 하더라도 석진과 함께 보낼 시간이 얼마 안 될 건 짐작하고 있다. 석진이 곧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이라는 건 모두가 다 알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교를 굳이 지원하는 건, 그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이 애매하고 답답한 감정들을 달랠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태형아 나 좀 있으면 전역해”

“알고 있습니다”

 

“너 수료날이 나 말출 나가는 날이야”

“................”

 

예상보다 앞당겨진 이별의 시간에 태형은 적잖이 놀랐다. 아, 그랬었구나. 태형은 허탈해졌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매듭은 지어야 했다.

 


“상관 없습니다”

“거짓말”

 

“예?”

“상관없다고... 그래... 다 그렇게 얘기했지. 그래....”

 

석진의 눈시울이 금방 벌겋게 충혈되는 게 보여서 태형은 당황했다. 금방이라도 툭 터져버릴 것 같은 눈동자가, 태형을 원망스럽게 노려 보고 있었다. 태형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몇 초 간의 정적. 태형이 무슨 말이든 입을 떼려고 하는 순간,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김석진 병장님, 다음 훈련병 들여 보냅니까?]

 

 

“아니, 잠깐만!”

 

석진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한사코 밀어 넣고, 다시 태형을 뚫어져라 쳐다 봤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침묵. 태형은 도마 위에 놓인 생선처럼 석진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제 모습이 답답했다.

 

 

“일단 널 조교로 뽑는 문제는.. 고려해 볼게. 남은 훈련 잘 받고”

“네 알겠습니다”

 

“잠깐만”

 

석진의 시선이 태형의 손등에 꽂혔다. 낮에 훈련 받다가 까진 자리가 석진의 시선이 닿으니 더 따가운 것 같았다. 태형은 얼른 손을 뒤로 숨겼지만 그보다 석진의 손이 뻗어 나가는 게 빨랐다.

 

 

“여기 왜 이래?”

“괜찮습니다”

 

“대 봐”

“..............”

 

“까진 거 그냥 놔두면 덧나”

 

석진은 한 손으론 태형의 손을 빠져 나가지 못하게 쥐고, 다른 손으로 서랍을 열어 연고와 밴드를 꺼냈다. 한 손이 태형의 손과 얽혀 있으니 연고 뚜껑을 입으로 물고 돌렸다. 태형은 그런 석진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석진의 체온이 얹힌 손등이 언제 까졌나싶게 아프지 않았다. 석진은 태형의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그 위에 밴드를 덮었다. 언제 울 것 같은 표정이었나 싶게 개운하게 태형을 보면서 웃었다.

태형은 그런 석진을 보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당신의 마음이 까지고 벗겨진 자리에는 내 손이 닿아야 할 것 같다고.

 

 

 

 

 


그 뒤로도 태형과 석진의 관계는 딱히 달라진 게 없었다.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원래 서로가 보던 모습으로 돌아 갔다는 것뿐이었다. 석진은 이따금 태형을 쳐다 보며 웃거나 말을 걸었고, 태형은 석진이 왜 그날 그렇게 처절하게 울어야 했는지 여전히 궁금했지만, 질문 대신 묻는 말에 성실하게 대답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은 어느새 태형과 석진을 마지막 주로 데려다 놓았다.

모든 게 서툴기만 했던 태형의 손이 점점 빨라지고, 이제 석진의 도움 없이도 전투화 끈은 거뜬하게 묶어낼 수 있었다. 석진이 깔아 줬던 깔창은 태형의 발에 물집이 잡히지 않게 든든히 잡아 줬다.

태형은 원하던 대로 조교로 차출되기로 정해졌다. 태형이 훈련을 끝내고 수료식을 하는 날이 석진이 마지막 휴가를 출발하는 날이라는 건 이미 알고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그 시간이 닥쳐올수록 조교를 지원한 게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태형이 조교가 되기로 결정됐다고 해서 석진이 더 유별나게 챙겨주는 것도 아니었다. 둘은 원래부터 유지하던 거리. 딱 그 거리만큼만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서로에게서 가까워졌다.

 

 

“군장 검사 5분 전”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 놔도 안 가는데, 그 놈의 5분 5분은 왜 그렇게 빨리도 가는지. 일단 조교들 입에서 시간이 뱉어지고 나면 시계는 줄달음질을 친다. 야간 행군이 있는 날은 덥다 소리가 나올 만큼 날씨가 풀려 있었다. 난생 처음 싸 보는 군장에 모두들 속옷이 땀으로 젖을 만큼 시달리고 있었다. 정말 오늘 밤만 밤새 걸으면 이 훈련이 다 끝나는 건가? 태형은 믿을 수 없었다. 고작 한 달여 지났을 뿐인데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도저히 숨 쉬고 못 살 것 같던 군대인데도 자신은 여전히 살아 있고, 시커먼 사내들만 개미떼처럼 우글거리겠지 싶은 곳에도 김석진이 있었다. 태형은 군장을 싸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이게 재밌냐? 지민이 눈을 흘기며 묻기에 그냥 또 웃고 말았다.

 

“군장 검사 2분 전”

 

이번엔 석진의 목소리였다. 태형은 반갑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도 마주치기 전에 석진은 복도를 거쳐 다른 생활관 앞으로 가 버렸다. 태형은 괜히 풀이 죽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발목 너무 꽉 조이면 안돼”

“옙”

 

행군 출발 직전, 줄을 맞춰 연병장에 우르르 서 있을 때야 석진은 비로소 태형에게 한 걸음 더 다가 왔다. 지나치며 던지는 듯한 투로 말했다. 발목을 너무 조이면 안 된다는 말은 사실 어제 저녁 점호에서 석진이 훈련병 모두에게 한 말이었기 때문에 특별할 건 없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태형에게 한 번 더 말했다는 것. 태형은 일부러 석진 쪽을 돌아 보지 않고 사열대만 뚫어져라 바라 보고 있었다. 석진이 그런 태형의 정면으로 다가 와 태형이 쓴 방탄모의 비뚤어진 끈을 바로 잡아 줬다. 태형의 얼굴에 석진의 손길이 닿은 건 처음있는 일이었다. 태형은 석진의 손가락이 뜨겁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릴 수 있으면 얼른 돌려 버리고 싶을 만큼 화끈거렸지만 피할 핑계가 없었다.

 

“힘들어도 네 군장 안 들어 줄 거야”

 

응? 태형은 이 말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어제 저녁 점호에서 석진은 이렇게 말했었다. 야간 행군은 밤새도록 걸어야 하는 거니까, 어깨나 다리에 무리가 가는 사람은 언제든 이야기를 하라고. 물론 그렇다고 대놓고 못 걷겠다고 나자빠지는 놈이야 없겠지만, 태형은 힘들면 좀 농땡이를 부려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이번엔 아파도 나한테 얘기하지마. 끝까지 해. 조교 아무나 되는 거 아냐”

 

태형은 그제야 석진이 한 말의 의미를 알아챘다. 그러니까 이 정도도 못하면 조교 자격이 없다는 거였다. 자신은 곧 떠날 거고 그러면 태형을 돌봐 줄 수 없으니까. 그래서 태형은 석진더러 보란 듯이 이 행군을 완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깨를 짓누른 군장의 무게가 새삼 두 배로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걷고 또 걸었다. 이제 전쟁 터지면 미사일 한 방이면 끝나는 거 아닌가? 태형은 속으로 꿍얼거렸다. 전쟁 나도 이렇게 행군할 일은 이 시대엔 없을 것 같은데 - 그런 생각은 태형 혼자만이 아닌지 다들 밤이 깊어 갈수록 호흡도 거칠어 갔다. 가로등 하나 제대로 없는 산길을, 어쩌면 제자리를 빙빙 도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조교들과 간부들이 들고 있는 손전등과,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안전띠 등등만 눈앞에서 어지럽게 왔다 갔다 했다.

태형은 석진이 계속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않고 걷는다는 걸 느꼈다. 그렇지만 옆을 돌아 보지는 않았다. 석진도 일부러 태형의 옆에 붙어 가면서도 태형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걸었을까. 태형은 제 주머니 안에 무언가 쓰윽 들어오는 걸 느끼고 기겁을 했다. 갑자기 벌레라도 들어 왔나? 그런데 벌레 치고는 너무 컸다. 주머니에 갑작스레 느껴진 이물감에 깜작 놀라 고개를 돌리니, 석진이 무언가를 집어 넣고는 한 발짝 멀어졌다.

뭐지? 태형은 걸으면서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 넣었다. 버석거리는 비닐의 질감, 초코바였다. 훈련병들 중 그 누구도 간식 거리를 챙겨 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PX를 갈 수 없으니까. 그런데 태형은 지금 언감생심, 황금보다 귀하다는 초코바 하나를 받았다.

 

“쉴 때 먹어”

 

석진이 태형의 왼쪽 어깨를 두어번 토닥였다. 군장 끈에 짓눌린 어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별이 참 많습니다”

“응, 맞아. 여긴 볼 게 별이랑 노을밖에 없어”

 

“여기 와서 은하수 처음 봅니다”

“나도 여기 와서 처음 봤어”

 

 

70년대 신파 영화의 대사로 너무나 적절할 것 같은 멘트가 태형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 은하의 별들 중 하나를 똑 떼어다 당신 눈에 박은 것 같다고. 아닌 게 아니라 태형은 정말 자신을 바라보는 석진의 눈이 별 같다고 생각했다. 까만 융단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태형은 하나 하나 헤아려 보다가 지쳐서 포기했다. 당장 제 옆에 가까이 있는 별 하나를 보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너 목소리 좋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둘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거친 숨들을 뱉어내기 바쁜 와중에, 석진과 태형은 숨이 차 올라 쌕쌕거리면서도 이야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느 조교도 훈련병과 사적인 대화를 이렇게 길게 나눈 적은 없었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여길 만큼 대화가 잦은데, 다행히 다들 자기네 걷는 데에 정신이 팔려 석진과 태형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목소리 좋다는 말에 어깨가 한 뼘 올라 갔다. 물론 군대 바깥에서도 목소리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 봤지만, 석진에게 듣는 것만큼 기분 좋은 때는 없었다.

 

 

“전역하시면 뭐하십니까?”

“나? 복학해야지”

 

“놀러 오십니까?”

“어디, 여길? 징그러”

 

 

그래도 나 보러 오시지 말입니다 - 이 말이 태형의 혀 끝에 뱅뱅 돌았다.

 

 

“모르겠다. 나가면 다시 그리워질까 여기가?”

 

 

여기에 내가 있는데 당연히요 -

 

 

한동안 둘은 말을 잊었다. 길섶에서 자기 잠을 깨웠다고 시끄럽게 항변하는 풀벌레 소리와, 그를 달래는 바람 소리만 이따금 들려 왔다. 태형의 시선은 다시 앞으로 향했다. 저 멀리 불빛 몇 점이 보였다. 마을의 가로등인 것 같았다. 이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면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분명 석진이 옆에 걷고 있는데도, 저 불빛과 어둠이 맞닿은 곳에 석진이 먼저 가서 서 있을 것만 같았다.

 

 

 

 

 

 

수료식날 아침, 나무들은 훈련병 머릿수보다 더 많은 벚꽃을 잔뜩 토해내고 있었다. 눈이 부실 만큼 무성한 벚꽃들 사이로, 태형은 부지런히 눈동자를 굴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석진이 없었다. 태형은 그냥 자리에 주저 앉고 싶어 졌다. 봐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휴가 나가는 게 급하고 좋은 일이라도, 수료식 정돈 봐 주고 나갈 거라고 믿었는데. 저 혼자만의 상상에 파묻혀 허덕이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을지. 온갖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덤벼들어 기분이 구렸다.

 

“어디 안 좋나 몸?”

“아니, 아니다”

 

“에이, 인제 내 못 본다고 섭섭해서 그러는구나”

“치아라 마,,, 웃기네”

 

지민의 실없는 농담에 한 번 피식했다가, 다시 안개처럼 깔아지는 기분. 혹시 놓친 게 아닐까 싶어 한 번 더 주변을 둘러 봤다.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도 석진만큼은 눈에 확 띌 텐데, 그게 아닌 걸 보니 없는 게 분명한 것 같았다.

 

 

“저, 분대장님”

“어?”

 

“김석진 분대장님 어디 가셨습니까?”

“김석진 병장님? 오늘부터 휴가잖아. 아침에 나가셨는데? 왜?”

 

“아, 아닙니다”

“전투모나 똑바로 써라”

 

“예 알겠습니다”

 

석진이 이 비뚤어진 전투모를 바로 잡아 줬다면 - 태형은 제 마음이 비뚤어져 그런지 자꾸만 각이 맞지 않는 전투모를 신경질적으로 잡아 당겼다. 수료식은 길고 지루했다. 게다가 우울함까지 덮쳐서 태형은 죽을 맛이었다. 내리붓는 봄 햇빛이 달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썼다. 그냥 이렇게 끝나버린 걸까. 한바탕 꿈을 꾼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해 볼 걸. 아니, 어쩌면 이렇게 끝날 거니까 안 한 게 다행인가. 머릿속이 복잡해 어지러웠다.

긴 수료식이 끝나고, 태형이 생활하던 건물 전체는 텅 비었다. 큰물이 휩쓸고 간 자리처럼, 텅 빈 건물은 태형의 마음같이 황량하기만 했다. 훈련병들은 모두들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남은 건 태형처럼 훈련소에서 근무하기로 정해진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야 김태형아”

“이병 김태형”

 

“네 짐은 싸서 4층 3생활관으로 가져 와라. 이제부터 거기가 네 집이다”

“예 알겠습니다!”

 

이제 대답이 바뀌었다. 더 이상 35번 훈련병 김태형이 아니라 이병 김태형이다. 하루 만에 바뀌어버린 처지가 그렇다고 더 나아진 건 아니지만, 석진이 불러 주지 않는 제 이름은 바뀌어봤자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태형은 제 물건을 꾸역꾸역 더블백에 우겨 넣었다. 석진이 남긴 흔적은 언제든 감출 수 있는 그런 짐에 있는 게 아니었다. 반짝거리는 전투화 앞굽, 그 안에 놓인 언제나 발을 따뜻하게 받치는 깔창. 손등의 흉터. 일부러 주머니에 그대로 간직해 뒀던, 석진이 건네 준 초코바 껍질.

 

버릴 수 없는 게 더 많아 태형은 슬펐다. 2년 내내 저 흔적을 부둥켜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게, 지금으로선 너무나도 아득한 일이었다.

 

 

 

 

 

“야 김태형!”

 

텅 빈 건물에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러나 태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현실성 없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김태형!!!”

 

두 번째 부름에서야 태형은 비로소 이게 진짜라는 걸 깨닫고 돌아 봤다. 거기엔 석진이 서 있었다. 태형은 믿을 수 없어 눈만 깜박거렸다. 김석진은 여기 있으면 안 될 사람이었으니까.

 

 

“하... 관등성명도 안 대고... 이 자식이..?”

 

계단을 뛰어 올라 왔는지, 석진은 몹시 허덕거렸다. 가쁜 숨을 채 갈무리하지도 못한 채 태형을 몰아 세웠다.

 

 

“야, 넌 진짜... 와... 왜 그래?”

 

 

태형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원망을 해야 한다면 오히려 그건 자기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석진이 자신을 탓하며 몰아 붙이고 있었다. 왜지? 그러나 태형은 반박할 수 없었다.

 

 

“너한테 이거 줄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네.. 후..”

 

석진이 건넨 작은 종이 가방에는 지갑과 군번줄이 들어 있었다. 지갑은 새 것이었다. 아마 수료식 선물로 주려고 석진이 봐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군번줄은 의외였다. 이미 태형은 자기 군번이 새겨진 군번줄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석진이 건넨 군번줄에는 자기 군번 외에 다른 군번 하나가 같이 새겨져 있었다. 태형이 의아하다는 투로 쳐다 보자, 석진은 입을 우물거리며 말을 선뜻 못 꺼냈다.

 

 

“고생했어 김태형. 축하해...”

“이거...”

 

“맞아, 내 군번”

“아.....”

 

 

태형은 그제야 쇠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그제야 비로소 웃음이 났다. 태형이 웃으니 석진도 따라 웃었다.

 

“고백하면.. 되는 타이밍입니까 저?”

 

석진이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태형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를 재빨리 살피고, 석진에게 한 발짝 성큼 다가섰다. 석진이 태형에게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태형은 한 발 더 다가가 석진의 바로 코 앞에 섰다. 석진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태형이 석진의 이마에 쪽- 하고 제 입술을 찧었다. 창 밖에선 바람이 불자 벚꽃들이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꽃잎 몇 점이 날려 둘의 머리 위에 앉았다.

 

 

“난 전역인데.. 남친은 이등병이네....”

 

 

석진이 벚꽃처럼 웃었다. 태형은 그제야 4월의 햇빛이 달게 느껴졌다.

밥-뷔진-잠-뷔진-일-뷔진-밥-뷔진... 뷔진 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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