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예 폐하”

 

“혹시 저 사람... 소경입니까?”

“.........그런 것 같사옵니다 폐하”

 

“.................”

 

자식을 낳기 전의 세상을 보는 눈과 자식을 낳은 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건 태형도 익히 경험해 알고 있다. 아이들의 존재는 태형에게 식견과 안목의 지평을 넓힌다. 그런데 여섯 아이를 두고도 보지 못하던 것들이 있었나보다. 그건 바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다. 

태형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자신의 주변에는 키질한 듯 사지육신이 멀쩡한 사람들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간혹 병을 앓는다 하더라도 대개는 감기 등의 가벼운 질병이었기에 영구히 불편한 육신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입장을, 고려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행을 나와서였다. 태형은 스스로에게 놀랐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니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행동이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지금 태형이 서 있는 길의 맞은편에는 맹인 한 사람이 있다. 그의 눈꺼풀을 반쯤 덮여 있으며, 그 눈꺼풀이 반쯤 열린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묘하게 초점이 어긋나 있다. 눈동자의 색도 선명하지 않고 뿌옇게 푸르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그 걸음이 무척 조심스럽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이 번잡한 시장통에서 그는 간혹 행인들에게 몸을 부딪히기도 하고, 그래서 비틀거리며 쓰러질 뻔한 위기도 몇 번을 겪는다. 태형이 지켜 보는 이 짧은 순간만 해도 몇 번이나 그런 고비가 있었다. 그의 더딘 걸음. 위태로운 행보. 그것이 내 아이의 앞날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태형은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

 

 

“폐....”

 

사람들을 헤치고 맞은편으로 뛰어가는 태형을, 윤기는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밖이니 폐하라고 크게 외칠 수도 없다. 태형은 순식간에 그 맹인에게로 뛰어 가 그의 앞에 선다. 맹인의 지팡이가 태형의 다리에 걸린다.

 

“죄송합니다. 앞이 안 보여 그러니 좀 비켜 주십시오”

 

무엇을 어쩌자고 온 것도 아니다. 그는 태형의 지인이 아니며 그에게 어떤 용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당장 자신의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무작정 그에게로 달렸다. 아버지 연배로 보이는 그의 앞에서 태형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신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는 걸 깨닫고 놀라 비켜 선다.

 

“죄송합니다... 비켜 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다시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앞으로 간다. 그의 걸음은 보통 사람의 그것에 비할 수 없이 느리다. 내 딸도 저렇게 느린 걸음으로 남보다 뒤쳐져서 이 세상을 살아가겠지. 아이의 짧은 한쪽 다리가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있다. 태형은 그가 아주 멀어질 때까지 두고두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윤기는 그 장면을 아프게 눈동자에 새기며 지켜만 본다.

그러나 이 거리에는 방금 지나간 맹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태형에게 보라는 듯, 원래 서 있던 쪽에서는 다리를 심하게 저는 한 여인이 걸어간다. 그녀는 널따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데, 그 광주리가 그녀의 걸음을 따라 격렬히 출렁거린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처절한 비극을 주제로 한 춤사위 같다. 모두가 꼿꼿이 서서 걸어가는 사이로 그녀만이 출렁거리고 흔들거린다.

그녀는 자신만의 춤사위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여기를 보라. 당신들이 그 뻣뻣한 직립 보행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을 간과하고 지나칠 때, 나는 당신들보다 유려하고 느린 걸음으로 당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모두 보고 간다. 과연 누가 어리석고 아둔하냐 -

 

태형은 장사꾼인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저 몸으로, 저 걸음으로 그녀는 매일 시장에 나와 물건을 팔았을 것이다. 남들의 눈총을 받아가면서, 남들의 불편한 말과 시선을 받아가면서. 그러면서도 나오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행색은 절대로 화려하거나 빛나지 않는다. 오히려 궁핍한 살림을 증명이라도 하듯 옷은 헤졌고 찌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짓은 신성해 보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뻣뻣한 나무 토막처럼 걸어다닐 때 그녀 혼자 신이 선사해 준 춤사위를 선보인다. 아- 그래도 살아가는구나. 절망하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애를 쓰고 있는 태형에게, 그 이름 모를 여인의 걸음은 커다란 깨달음을 준다. 지금 자신의 처지는 저 여인보다 백배 천배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을 것이다.

 

 

“폐하”

“사형... 이렇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은 줄 왜 몰랐을까요 나는”

 

“................하필 오늘 좀 많이 보이는 것 같사옵니다 저도”

“기분 탓일까요”

 

“그건 소신도 잘....”

“얼마나 힘들까요... 저 불편한 다리로 저렇게 장사를 다니려면...”

 

 

태형은 염치 불구하고 그 여인에게 쫓아가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 왔느냐고. 당신의 부모는 어떻게 당신을 키웠느냐고. 그리고 내 딸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태형의 눈이 물기로 뿌옇게 변한 사이 그녀는 이내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없다. 태형은 그녀가 사라진 곳만 멍하니 바라본다.

 

 

“왜 저런 모습들이 이제야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분명 전에도 내 눈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었을 텐데... 왜 못 봤을까....”


 

새삼 자신의 좁았던 식견과 안목이 부끄럽다. 이번 아이의 탄생을 통해 태형은 전에 없던 고통을 느끼긴 했지만, 그 아이 덕에 더 성숙하게 된다. 아이에게 예견된 불행을 막아야 할 자신의 책무. 그리고 내 아이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수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할 군주로서의 책무를 동시에 느낀다.

 

 

 

 

 

 

 

 

 

 

 

 

“네 어머니는?”

“어머니 부엌에요. 마마께선 좀 어떠세요?”

 

“뭐...그냥 그렇다”

“...........물어 보는 제가 어리석네요. 뻔한 걸”

 

석진의 아버지는 지금의 상황을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것을 비극이라고 단정지어버리면 그 아이의 탄생은 저주가 되어버린다. 그 어떤 생명의 탄생도 함부로 ‘저주’라고 속단되어서는 안 된다. 손가락이 여섯 개든 다섯 개든, 한쪽 다리가 짧든 길든 모두에게 주어진 생명의 값어치는 똑같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당장 석진의 형제들만 해도 석진에게 일어난 일을 ‘비극’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직접 찾아 가 안부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한다. 석진의 아버지는 아들이 가까운 사람들의 그런 조심스러운 배려를, 자신과 아이에 대한 거부감으로 느끼고 절망할까봐 걱정스럽다.

 

“다음 주쯤 너도 궁에 들어 가 봐라”

“그래도.... 돼요 아버지?”

 

“안 될 게 뭐 있어”

“조심스러워서...”

 

“혜진아”

“네 아버지”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거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렇게 할게요”

 

석진의 큰 누이 역시 석진을 대하는 일을 조심스러워한다. 하지만 이내 아버지의 뜻을 알아 채고 고개를 숙인다. 그는 아내를 찾아 부엌으로 간다. 자신보다도 더 큰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 석진의 산후 조리를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눈동자에서도 생기는 사라져 있다. 부엌에 가 있다곤 했지만 부엌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그는 왜 아내가 부엌문을 굳게 닫아 걸었는지 안다. 안에 아내가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강 씨 부인은 아궁이 앞에 앉아 있다. 부지깽이를 들고 아궁이의 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 붉은 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눈동자에는 작은 불길이 담겨 있다. 그것이 근녀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불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고 타서 재가 되었을 법도 한데 아직도 탈 것이 남았는지, 노란 불기둥이 그녀의 눈에서 기름처럼 유들거린다.

 

그는 말없이 아내의 곁으로 가서 앉는다. 아궁이 불의 적나라한 열기가 얼굴로 달려든다. 금세 얼굴이 벌겋게 익을 것 같다.

 

 

“일하는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당신만 혼자 여기서 이러고 있소”

“.................”

 

“마마께서 수라 다 드시는 거 보고 왔소”

“다 드시던가요”

 

“응. 오늘은 어제보다 더 잘 드시더구만”

“......................”

 

석진이 식사를 잘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커다란 위안이 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조금의 무게를 덜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석진이 조금씩 안정과 기운을 되찾아 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궁을 떠나 있어도 온종일 강 씨 부인의 마음은 그곳으로 향해 있다. 석진이 있는 쪽의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이 그녀의 일과가 되었다.

 

 

“혜진이 아버지”

“응”

 

“나 때문이에요”

“당신은 또 왜.....”

 

“말 못 한 게 있어요”

“무슨....?”

 

 

누구의 책임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따지지 않기로 한 건 태형이었다. 그런 것을 밝혀 낸다고 해도 아이의 나머지 한 손가락을 떼어 낼 수도 없고, 짧은 한쪽 다리를 길게 늘일 수도 없다. 그러니 이제는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감히 거론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굳이 금지된 화제를 꺼내고 있다.

 

 

“홍원 오라버니 위에 오라버니가 한 분이 더 계셨대요”

“지금 처남들 얘기 하는 거요?”

 

“예”

“큰 처남 위에 한 분이 더 계셨다고?”

 

“나는 당연히 기억이 없어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고 했으니까”

“난 그 얘긴 처음 듣는데....”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분이 왜?”

 

“그 돌아가신 오라버니가.. 육손이었다는 얘기. 들은 적 있어요”

“..........................”

 

“그러니까... 나 때문이에요 이건 다....”

“여보!”

 

그것이 과연 유전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들은 의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감히 속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강 씨 부인의 생각에 이미 이 모든 상황은 자신과 자신의 친정 때문이라고 굳어져 있다. 차마 석진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어차피 오래 전에 요절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석진의 외가에서도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마마께서 만약 이 사실을 아시면.... 더 자책하실까봐 말을 못 했어요”

“.................”

 

“그냥 말 안 할래요”

“그래요... 그게 좋겠네”

 

 

강 씨 부인의 눈 속에서 이글거리던 작은 불은 어느새 물기에 녹아내리고 있다. 북돋운 아궁이의 불길에도 주눅들지 않고 끓기 시작하는 눈물. 그녀는 석진이 느낄 자책감까지 모두 자신이 집어 삼키고자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어둡고 복잡한 감정들을 아궁이 불에 집어 넣고 싶다. 한 줄기 검은 연기로 화해 훨훨 흩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꼭 그 돌아가신 처남 탓은 아니니까....”

“혹시라도 이 사실을 궁에 있는 어른들이 알게 되실까봐 겁이 나요”

 

“폐하께서 그런 걸 따지지 말자고 하셨으니 걱정 안 해도 될 거요. 그런 걸 탓하실 어른들도 아니고.. 한 두 해 겪나 우리가 그 분들을”

 

“아유... 눈 매워...”

 

 

그녀는 자신의 눈에 고인 눈물을 매운 연기 탓으로 돌려버린다. 손등으로 눈물을 쓱쓱 닦아낸다. 석진의 아버지는 아내의 손에 들려 있는 부지깽이를 빼앗아 붉게 욱신거리는 장작을 좀 더 아궁이 안으로 밀어 넣는다.

 

 

 

 

 

 

 

 

 

“우리 공주 오늘 잘 놀았어?”

 

그의 음성에는 다정함이 담뿍 실려 있다. 석진은 그가 막내 아이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만 들어도 괜히 가슴이 울컥하고 콧날이 찡하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다정함을 담아 아이에게 전하려는 것 같다. 확실히 다른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도 다르다. 태형이 불편한 몸으로 태어난 막내 아이에게 어떤 애정을 갖고 있는지를 확실히 증명하는 태도다.

아이의 새까맣고 맑은 눈동자는 아직 제 부모를 구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뱃속에서부터 들어오던 익숙한 음성을 분명히 기억하는 것 같다. 초점은 분명하지 않아도 태형을 빤히 주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확실히 그의 품에서는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기저귀는 언제 갈았어요?”

“조금 전에요. 아직 기저귀는 안 보셔도 돼요”

 

“젖은?”

“오늘도 잘 먹었어요”

 

“당신 밥은?”

“저도 잘 먹었어요”

 

“거짓말은 아니겠지?”

“물어 보세요 다른 이들한테”

 

 

종일 자리를 비웠던 태형은 돌아오자마자 궁금했던 것들을 이것저것 묻는다. 다른 상궁들에게 물어도 될 이야기들이지만 석진에게 직접 묻는 이유는, 석진에게 한 마디의 말이라도 더 붙여 보기 위함이다. 석진은 태형이 늘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의 진심은 묻지 않아도 뻔하다. 그의 하루가 편하려면 석진과 아이의 하루가 무사해야 한다.

 

 

“오늘 잠행 갔다가 느낀 건데”

“아 맞다 오늘 갔다 오신댔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구요. 우리가 못 보고 지나쳤던 거였어”

“어떤 사람들을.. 보셨길래요”

 

 

태형이 잠행 나가서 본 신체 불편한 이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가 잠행을 나간 목적이 그런 이들을 찾아 보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그런 사람들만 유난히도 많이 띄었다. 생각이 달라지니 보는 눈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석진은 그의 말에 유심히 귀를 기울인다. 석진에게도 남 일이 아닌 이야기들이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그리고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좀 모자란 듯한 사람....”

 

“그러게요. 저도 옛날엔 그런 사람들 별로 유심히 안 봤었는데”

“그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살고 있을까. 그 사람들의 부모는 어떤 심정으로 그 이들을 키웠을까...”

 

“................”

 

그들 모두가 자신과도 같은, 혹은 자신보다 더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고통도 견딜만 한 게 된다. 물론 태형이 지금의 고통을 견디기 어렵다고 느낀 적은 없다. 더 심한 고통이 온다 하더라도 거뜬히 버틸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들이 느꼈을 고초를 양식 삼아 용기를 얻는다는 건 무례한 일이다. 오히려 그런 의미보다는 그들에게 공감하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그리고 찾아보니까 그런 사람들을 위해 따로 마련해 놓은 법이... 없더라고. 이제부터 준비해야겠어요. 얘를 위해서라도“

 

태형은 잠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법전을 뒤졌다. 그리고 신체가 불편한 이들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법안이 없다는 걸 깨닫고 무척 놀랐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가난해서 먹고 살기 힘든 이들을 위해서는 많은 제도들을 정비하고 신설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그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자신이 성군이 결코 될 수 없음을 자각했다. 그들을 위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법은 곧 막내 아이를 위한 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왕 세상에 태어났으니 아이도 남들처럼 살아 봐야 한다. 아이의 가는 길 앞에 놓인 돌부리를 뽑아 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진은 태형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 본다. 그는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 뼈 아픈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석진은 문득 태형이 안쓰러워졌다. 자신은 슬픔과 좌절을 겉으로 드러내 보기라도 했었다. 밥을 먹지 않는다든가,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든가. 그러나 태형은 단 한 번도 그런 감정들을 남에게 보인 적이 없다. 심지어 모든 것을 다 내어 보이던 석진에게조차 그러지 않았다.

 

석진은 그에게 처음으로 묻는다.

 

“폐하”

“응?”

 

“안 힘드세요?”

“힘들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저한텐 힘들다고 하셔도 돼요”

“안 힘들어요”

 

“정말요?”

“응.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 몸 생각만 해요. 나는 신경 안 써도 돼. 정말로”

 

 

석진은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태형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와락 껴안는다. 젖 먹던 힘까지 실어 그를 안는다. 태형은 가만히 석진의 등을 토닥이기만 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는다. 번잡한 말이 필요하지 않다. 맞닿은 심장과 심장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맥박으로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애들한테도..보여 줍시다. 벌써 한 달이 다 돼 가. 애들이 궁금해서 못 견뎌 한다구”

 

 

삼칠일이 지나 태형이 잠행까지 다녀 올 정도로 자유로워졌지만 아직 둘은 다른 아이들에게 막내를 소개하지 못했다. 아이들도 대강은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은 했다. 특히 효민에게는 혜빈이 직접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남들의 시선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더 두려운 건 왜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은 이 막내 아이의 형제들이다. 남들이 모두 이상하다고 등을 돌려도 그 아이들만큼은 그래선 안 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태형도 석진도, 그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막내 아이의 남과 다른 신체를 보고 아이들이 놀라더라도, 혹은 겁을 먹고 쭈뼛거리더라도 다그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뤄 왔다. 아이들의 궁금증이 자꾸만 커져가는 걸 알면서도.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게 됐다. 벌써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세상엔 피할 수 없는 일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두 사람도 잘 알고 있다.

 

 

“................ 해야...겠죠”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고”

 

“내가 뭘 무서워하고 있는 건지 가끔 분간이 안 가요. 내 새끼들인데... 내가 왜”

“그러니까. 우리 새끼들이니까. 결국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겠지”

 

“효민이만... 먼저 보이면 안 돼요?”

“그럴까? 근데 그럼 다른 애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몰래요. 다른 애들 모르게...”

“당신 마음이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하구”

 

비록 나이는 어리더라도 석진은 장남에 대한 남다른 신뢰를 갖고 있다. 어지간한 어른보다 속이 깊은 그 아이는, 자신의 이런 두려움과 걱정도 모두 불식시켜 줄 것 같아서다.

 

“그럼 지금 차라리 불러 올까? 애들 다 잘 준비하고 있을 텐데”

“지금요?”

 

“응. 다른 애들보다 먼저 보게 하려면”

“그럴....까요”

 

 

큰아이에게 먼저 보인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석진에게는 막내 아이를 다른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일이 커다란 너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선은 하나의 파도부터 먼저 넘어 보고 싶다. 그렇게 차례로 넘어야만 큰 너울도 넘고 수평선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렇게 웃어?”

“좋아서요”

 

“뭐가 좋은데?”

“이제 어마마마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효연이도 볼 수 있으니깐요”

 

태형은 밤길을 걸어 직접 아이를 데리러 왔다. 아랫사람들을 시켜 아이를 불러 오라 명만 내리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손을 쥐고 데려 오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내관 하나가 그들의 앞에 푸른 초롱을 밝히고 걸어오는 밤길. 아이 손을 쥐고 걷는 이 길이 어둡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늘에는 달도 있고 별도 있다.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잔잔하게 웃고 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제 어머니를 보지 못 했으니 그것도 기분이 좋을 것이고, 새로 태어난 동생을 저만 홀로 먼저 만난다고 하니 그것도 기분이 좋은가보다. 하지만 태형의 입술은 여전히 무슨 말을 시원히 뱉지 못하고 들썩이고 있다. 아이에게 먼저 묻기가 무척 조심스럽다.

효민은 효연의 몸이 불편한 것을 혜빈에게 들어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태형도 전해 들은 바가 없다. 아이는 그런 동생의 존재를 달가워할까? 평소 이 아이의 성격과 행동으로 봐서는 당연히 순순하게 받아 들일 테지만 확신할 수 없다. 아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효민아”

“예 아바마마”

 

“효연이 얘기... 들었지?”

“네”

 

“내가 먼저 얘길 해 줬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만 입에 붙어서....”

“참 이상합니다”

 

“뭐가?”

“저는 정말로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씀 드리는 건데, 어른들은 자꾸만 제가 안 괜찮은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러냐... 그럼 우리가 미안하고”

 

아이가 진심으로 자신은 괜찮다고 읍소를 해도 태형의 입장에선 곧이 곧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워낙 속이 깊은 아이니 괜찮지 않아도 어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정작 그런 어른들의 반응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정말 괜찮다고 한다. 이제는 아이의 말을 사실 그대로 믿어 줘야 할 것 같다.

 

“태의 영감께 의서를 빌려 찾아 봤습니다”

“뭘? 효연이 몸에 대해서?”

 

“예”

“네가 의서를 읽기엔... 어렵지 않디?”

 

“솔직히 이해하기 힘든 것들도 많았는데. 태의 영감께 물어 보면서 좀 해결했습니다”

“그랬구나....”

 

남준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없지만 아마 이런 일이 있었더라도 남준은 쉽게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남준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다. 태형과 석진에게 쉽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태형과 석진을 배려하기 위해 그러는 것일 테지만 가끔은 섭섭할 때도 있다. 잘못한 것도 없이 소외나 배척을 당하는 기분이다.

아이는 무려 의서를 구해 읽어 보았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서는 태형이 읽기에도 어려운 구절들이 많다. 그런 것을 열한 살 아이가 남준에게 물어 가면서까지 읽었다고 한다. 행복하고 뿌듯하면서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 어린 아이에게 떠맡겨버린 것 같다.

 

 

“제가 업고 다니면 됩니다 아바마마”

“............... 그럼 난 뭐 하라구”

 

“아바마마께선 어마마마를 업고 다니시면 되지요”

“.......... 네가 나보다 낫다”

 

 

어둠 속이어서 다행이다. 태형은 어둠이 자신의 눈물을 감춰 주는 걸 천만다행으로 여긴다. 아이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숨 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금 구름 속에 숨은 저 달이 조금만 더, 침전에 도착할 때까지만 계속 구름 뒤에 숨어 있어 주길 바란다. 그래야 까만 어둠에 자신의 눈물이 가려 아이에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아들”

“어마마마”

 

“잘 있었어?”

“몸은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다. 잘 있었어?”

“네 저는 잘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아이는 못 본 한 달 여 동안 훌쩍 커버린 것 같다. 석진은 제게로 안겨 드는 효민을 안고 머리를 만지고 얼굴을 부빈다. 그리고 훌쩍 자란 것을 느낀다. 품에 안기는 몸집도, 눈높이도 모두 변한 것 같다. 이 아이에게도 나름대로의 고충과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일일이 따져 묻지는 않겠지만 석진은 충분히 짐작한다

효민은 석진의 품에 안겨 있다가 고개를 돌린다. 강보에 싸여 바닥에 눕혀 놓은 동생에게로 눈길이 가는 것이다. 아이의 눈이 커다랗게 열린다. 입꼬리가 활짝 올라가 온 얼굴에 웃음이 출렁거린다.

 

 

“우와....”

“이름 알지?”

 

“네.... 우와... 작다.....”

 

 

여섯째 아이가 태어난 것이 삼 년 전. 그러니까 효민은 삼 년 만에 갓난아기를 보는 셈이다. 처음 보는 갓난아이도 아니지만 그때와는 감회가 다른지 감탄을 연발한다. 아이에게 차마 손은 대지 못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무척 신기해한다.

 

“안아 볼래?”

“제가 안아 봐도 됩니까?”

 

“응. 어차피 나랑 아버지 계시니까 괜찮다”

“....................”

 

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낯을 가릴 일은 없다. 석진은 아이를 효민의 품에 조심스럽게 안겨 준다. 아이는 꽤나 긴장한 표정으로 막내를 안는다. 효민의 눈동자에 별이 반짝거린다. 무척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제 동생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큰 난관 하나를 넘은 것 같은 기분에 석진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손... 볼래?”

 

태형은 효민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려고 한다. 아이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숨길 이유도 없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것은 이 아이의 본연의 모습이지 감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태형이 강보를 조심스럽게 열어 젖히고 아이의 손을 꺼내어 효민에게 보인다. 효민은 조심스럽게 아이의 작고 붉은 손을 쥐어 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 동안 말이 없다. 태형과 석진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아이는 지금 제 동생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러나 묻지 않는다.

 

“근데 아바마마”

“응”

 

“보통 사람은 손가락이 다섯 개인데 효연이 손가락이 여섯 개면요.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효민의 말에 태형과 석진은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거대한 무언가로 머리를 거세게 얻어 맞은 것 같다. 아이는 여섯 개의 손가락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지만 어른들은 미처 닿지 않는 생각을 한다.

 

밥-뷔진-잠-뷔진-일-뷔진-밥-뷔진... 뷔진 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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